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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리뷰 68편] 채식주의자(줄거리, 서평)
    2023. 12. 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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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입지를 한단계 확장시킨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15년 만에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 상상력의 강렬한 결합을 정교한 구성과 흡인력 있는 문체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한강만의 방식으로 완성한 역작이다.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던 『채식주의자』는 “미국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키면서도 독자들과 공명할 것으로 보인다”(뉴욕타임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다”(가디언)라는 해외서평을 받았고 2018년에는 스페인에서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는 등 전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10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부터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하는 ‘영혜’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은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인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에서 서술되며 영혜는 단 한번도 주도적인 화자의 위치를 얻지 못한다.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의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저항하며 금식을 통해 동물성을 벗어던지고 나무가 되고자 한 영혜가 보여주는 식물적 상상력의 경지는 모든 세대 독자를 아우르며 더 크나큰 공명을 이루어낼 것이다.
    저자
    한강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3.28

     

     

     

     
     

    68번 째 책을 읽었다.

     

    개인적인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산 그녀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출처 입력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지옥도를, 이 아수라를, 읽기만 했는데도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지는 소설을 써내려갔을까?

     

    채식주의자를 완독하고 첫 번째로 떠올린 내 마음이다.

     

    꿈이라는 단순한 키워드로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걷는 영혜

     

    그런 영혜를 케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버려버린 영혜의 남편

     

    완벽한 작품이라는 껍데기를 이용해 자신의 추악함을 성취했지만 그로인해 모든 것을 잃은 영혜 누나의 남편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점점 피폐해지는 영혜의 누나 영신.

     

    이 소설에서 해피엔딩은 아무도 없다. 그저 자신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걸을 뿐인 사람들인 것이다.

     

    작품 해설을 보면 그럴싸하게 각 등장인물의 입장에서의 시선을 서술하고 이해할만난 부분을 설명해주는데 난 몇 번을 읽어도 도저히 모르겠다.

     

    미친 영혜, 영혜를 쉽게 버린 남편, 영혜에게 추잡한 감정을 가진 영혜 언니의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영혜 언니의 입장에서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었었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 상황에 처한 사람은 누구도 아닌 영혜의 언니이다.

     

    파멸을 직접 맞이하는 자가 슬플까, 모든 파멸을 지켜보며 그 영향을 길고, 깊게 받는 자가 슬플까? 영신의 삶은 비참하기만 한 것 같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교훈도, 하고 싶은 말도 너무 큰 비극적인 스토리에 뭍히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나는 받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더럽고, 추악하고, 지저분한 소설로 이 책은 내게 남을 것 같다.

     

    인간실격은 추악한 내용을 전개했지만 아름답고 고품격의 문장으로 이를 완화했던 느낌이었지만 이 채식주의자는 추악한 내용을 직설적으로 독자에게 들려주기에 더 더 가혹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추천하기도, 추천하지 않기도 애매한 책이었다.

     

     


    줄거리

     

     

     

     

    채식주의자

    (영혜와 영혜 남편의 시점)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 기대에 걸맞게 그녀는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오직 한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어떤 꿈'을 꾼 뒤 이상해졌다. 그녀는 나의 존재를 무시하며 계속해서 쇠고기, 돼지고기, 닭, 바다 장어를 쓰레기 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그녀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아내가 여위어 가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사실상 그녀는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내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더이상 나와 섹스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모든 종류의 가죽제품도 버려버렸다.

     

    장인, 장모를 비롯한 가족들의 설득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와이프가 계속 육식을 거부하자 장인은 아내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강제로 아내의 입에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탕수육을 뱉어낸 아내는 으르렁 거리더니 과도를 집어들고는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놀람이나 당혹감보다 강하게, 아내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이 이상하고 무서운 여자와 단둘이 한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있는거야.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흩어지고,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거야."

     

    아내는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사고를 쳤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와이프를 병원 분수대 옆 벤치에서 발견했다. 상의를 벗어 놓은 채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움켜진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눌려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선혈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몽고반점

    (영혜의 언니와 영혜의 언니 남편의 시점)

     

    마지막 작품을 완성한 것이 벌써 2년 전이다. 내면을 초조하게 만들 만큼의 공백이었다. 나는 아들을 씻기고 나온 뒤 아들의 사라지지 않는 몽고반점을 의아해했고 이에 와이프가 대답했다.

     

    "영혜는 뭐, 지금도 있을 걸?"

     

    이 날부터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 반점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어떻게 이 이미지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것이 아니면 안되었다. 이것이 아니라면 어떤 작업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전시와 영화, 공연 따위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내는 대학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한다. 일요일 하루만 시간을 비워달라는 것이 아내의 유일한 요구사항이었다. 하지만 아내를 볼 때마다 겹쳐 떠어로는 처제의 얼굴 때문에 마음은 한순간도 편치않았다. 아내와 비교하면 훨씬 못생겼다고도 할 수 있는 처제의 모습에서, 가지를 치지않은 야생의 나무 같은 힘이 느껴졌다.

     

    결국 처제가 정신병으로 인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로 겸 상태를 확인할 겸 처제를 만나보기로 했다. 처제를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분명히 아내에게서 몽고반점에 대한 말을 들은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조금도 처제에게 딴 마음을 품은 적이 없다.

     

    처제를 찾아갔을 때 처제는 문도 잠그지 않고 알몸 상태로 있었다. 이후 옷을 입은 후에도 그 처제의 엉덩이가 조용히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나는 몸을 떨었다. 처제는 재취업도 준비하는 상태였고 그다지 미쳐보이지는 않았다.

     

    난 용기내어 처제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 옷을 전부 벗고 물감을 칠한 뒤 영상으로 찍겠다는 내 심한 부탁을 처제는 승낙해주었다.

     

    아이를 통해 연결된, 군더더기 없는, 일종의 동업자의 관계가 이즈음 아내와 나의 관계였다.

     

    처제와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있었다. 그녀의 침착한 태도도 자극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근원을 건드리는 무언가였다. 그녀의 눈은 어떤 격렬함을, 동시에 그것을 자제하는 힘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제는 작업이 끝난 뒤, 자신의 몸에 그려진 꽃 페인티잉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제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완벽하게 제작하고 싶기에 밤낮을 바쳤다. 시간이 없는 내 모습에 아내는 크게 낙담한 것 같았다. 차라리 아내가 다른 아내들처럼 소리치고 화를 낸다면, 잔소리를 하고 악담을 퍼붓는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이토록 쉽게 체념하고, 그 체념의 앙금이 우울함으로 가라앉는 아내의 성격이 날 숨막히게 했다.

     

    더 완벽한 작품을 위해 내 후배까지 처제와의 작품에 투입시켰다. 난 둘에게 실제 정사를 요구했지만 후배에게 거절당했다. 처제는 마무리된 상황에서 말했다.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 그 사람 몸에 뒤덮힌 꽂이요.. 그게 날 못 견디게 했던 거야"

     

    작품을 중단하고 집으로 가는 길. 왜 눈물이 흘러내리는지 모르는 채 운전대를 거머쥐고 몇 번이고 와이퍼를 작동시키려다가, 뿌연 것은 유리창이 아닌 내 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왜 주문처럼 머리 안쪽에서 쉴새없이 터져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 몸에 꽃으로 페인팅을 하고 처제와 작품을 찍었고 가장 추악한 행위까지 저질렀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나는 일곱시간 동안 긴 잠에 빠졌고 깼을 때 처음 본 것은 아내의 얼굴이었다. 아내는 처제가 걱정되어 찾아왔던 것이고 익숙한 캠코더를 돌려 처제와 같이 자고 있던 날, 처제와의 작품을 본 것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 충격과 절망이 함께 있었으나, 얼굴의 표정 자체는 오히려 거의 무감각하게 보였다. 처제는 그냥 멍한,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와이프는 우리 둘을 정신병자 취급해 신고했고 난 그 자리에 못 박혀 서서, 삻의 처음이지 마지막 순간인 듯,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타오르는 처제의 번쩍이는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무 불꽃

    (영혜의 언니 시점)

     

    내게 영혜는 무한히 보살펴야 할, 모성애와 같은 책임감을 주는 존재였다. 내 남편은 날개가 있는 것들을 즐겨 찍었다. 새, 나비, 비행기부터 나방이나 파리에 이르기까지. 침묵에 싸여 있던 남편의 실체를 과연 나는 만난 적 있었을까.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작품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내가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아홉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서울 생활을 헤쳐나온 자신의 뒷모습을, 지친 남편을 통해 그저 비춰보았던 것은 아닐까?

     

    아들 지우는 남편이 떠난 뒤 줄곧 "우리 집에 아빠있어?"라고 묻곤 했는데 "아무도 없어. 너랑 엄마만 있는 거야. 언제까지나 그럴거야"라고 대답해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언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그 날 영혜를 때리던 아버지의 손을, 자해하던 영혜의 칼을, 영혜의 이혼을,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병원에서 정상으로 판명된 남편은 유치장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로는 잠적해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영혜는 폐쇄병동에서 나오지 못했다. 난 영혜를 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는 입원비를 대야 했고, 누군가가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영혜는 정신분열증이면서 식사를 거부하는 특수한 경우라고 했다. 음식을 거부하는 이유 자체가 불분명하고, 약도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사실은 그 애를 은밀히 미워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영혜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내가 음식을 가져다 주자 영혜는

     

    "언니, 나 이제 안 먹어도 돼.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나 음식 필요없이 물이 필요한데. 난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어.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거야"

     

    라고 답했다. 생리는 멎은 지 오래고, 몸무게가 30kg도 안되게 되었다. 영혜는 나무가 되고싶어했다. 처음부터 영혜는 죽음을 원해온 것이 아닐까?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산 그녀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영혜는 깨달았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영혜는 계속해서 자신을 파괴시키고 있다. 쇠약해진 네가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남편은 무슨 마음으로 그런 테이프를 만들고 싶어했을까. 그 기묘하고 황량한 영상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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