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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주저리주저리 2024. 8. 7. 13:17728x90반응형
오랜만에 현장이 아닌 사무실로 출근했다. 최근 마음이 뒤숭숭한 날들이 많아서 그런지 글을 써볼까 싶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난 글의 힘을 믿는다.
보통이 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도 내 생각을 글로, 특히 타자가 아닌 손글씨로 꾹꾹 눌러쓸 때면 생각정리와 차분함이라는 과실을 항상 얻곤 한다.
게다가 휘발되는 말과 다르게 영속성을 지닌 글을 어쩌다 다시 한 번 보게 될 때면 그 당시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상황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물의 역할도 한다.
업무 시간에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지만.. 나 박창현, 이번 휴가 때도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장비 Manual 제작을 위해 1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때려박았다. 그러니 '인증받은 일탈'이라고 내 자신을 다독여주고 싶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글을 써볼까 생각하다 문득 주제가 떠올랐다. 바로 "내게 영향을 줬던 사람들"에 관한 글이다. 나라는 사람을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한 여러 관계 속에서 굵직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다. 그게 긍정적인 영향이든, 부정적인 영향이든...
포기를 모르는 친구 A
내게는 정말 독기가 넘치는 친구가 있다. 몇년 째 같은 목표를 위해 도전하는 친구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테고 지금도 어려울 것이다. 외로울 것이다.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 대다수가 직장에 들어가 진급하고, 심지어 결혼해 가정을 꾸린 경우도 종종 있다. 주변인의 시선도 따가울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굴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기의 갈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였으면 목표를 위해 남들의 시선, 내 자신의 의문,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을까? 친구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녀석이다. 장난삼아 친구에게도 말했었지만 이 친구가 여자였다면 납치라도 해서 결혼했었을 것이다. 그만큼 현명한 친구다.
너무나 춥고 기약없는 설원을 걷고 있지만 그 여정의 끝에는 누구도 쉽게 취하지 못할 큰 보상이 친구를 맞이하기를.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빛이 나는 B
이 친구도 A와 비슷하게, 다른 방향으로 독기가 상당했다. B와는 중학생때부터 알던 나는 이 친구와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 학교 대장이었던 이 친구를 무서워했던 적도 있었고 주먹다짐을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며 으르렁 거린 적도 있었다.
B는 꿈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정치인, 고기집 사장. 댄서 등등... 친구는 현재 짬뽕집 사장님이 되어 월매출 수천만 원을 자랑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것은 덤으로 말이다.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정말 미쳤었다. 저재산을 털어 선거운동을 해 학생회장이 되었고, 춤에 미쳐서 학교는 뒷전으로 미룬 적도 있었으며, 짬뽕에 미쳐 전국의 짬뽕집을 돌며 일을 배우고 맛 비교를 위해 토하고 먹고 토하고 먹는 것을 반복했다. 바디 프로필까지 찍었던 친구는 어느새 돼지가 되어있었다.
모두가 이 친구를 걱정했다. 안정적인 직업 없이 꿈만 따라다닌다고. 하지만 현재 친구의 모습을 보라. 성공한 사업에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하다. 사람이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그 일에 미쳤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이 친구에게 배웠다.
고약한 말로 모두를 잃은 C
친형만큼 정말 좋아했고 따랐던 형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싸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게임도 잘하고, 리더쉽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이 형한테 몇 번 맞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 정말 가까워졌다. 1주일에 3번은 만났고 취직을 한 후에도 구미에 돌아올 때면 항상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다. 주위 많은 사람들도 형과의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안다. 형은 시간이 갈수록 많은 장점들을 퇴색시키는 나쁜 말을 뱉어대곤 했다. 지친 것일까? 나이를 먹은 것일까? 슬슬 거슬리던 말들이 분노를 일으켰고 형과 다투게 되었다. 그 이후 몇 번인가 화해할 기회가 있었지만 형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좋은 말과 달리 나쁜 말은 가슴에 꽂히고, 잘 아물지 않는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간간히 다시 가슴을 파고든다.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칼을 꽂진 않았을까, 꽃힌 사람은 아직도 나 때문에 아파하고 있을까? 나쁜 말의 위력과 아픔, 결과를 이 사건을 계기로 잘 알게 되었다.
고통과 슬픔을 나누지 못한 D, E
D. 둥근 성격으로 이 친구가 누군가에게 미움이라는 것을 받아봤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항상 웃었고 잘 베풀기도 했으며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E. 누가 봐도 예쁜 친구였다. 다년간의 운동으로 몸매도 좋아 항상 인기가 많았던 그녀였다.
D와 E 둘 다 나와 아주 친했다.
D는 내 입대 2주를 앞두고 거의 함께 살다싶이 했었고 E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둘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D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E는 평범한 오후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겉으로 보기에 둘은 아무 문제도 없었고 내게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나와 함께 고민해보고 고민을 털어놔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쯤 나와같이 웃고 떠들고 있진 않았을까.
사람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우울함이라는 것은 우울함이 우울함을 낳는 연속성까지 가지고 있기에 힘들 때 털어놓자. 공유하고 나눠보자. 우리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받아본 사람이 더 잘 나눠주더라 F
파주에서 살던 때, F라는 누나를 만났다. 신기했다. 아니 신비로웠다.
내 성향 덕인지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서인지 나는 공격적, 강인함, 개인주의 같은 것들을 추구했고 나 역시 좋아했다. 반면에 F는 나와 달랐다. 상대방을 볼 때 단점, 약점이 아닌 장점만을 봤고 항상 웃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티가 난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만날 때마다 행복했다. 긍정적인 기운을 항상 받을 수 있었고 F는 현명하기까지 했다. 난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나중에 내 아이들이 생기면 운동이나 시켜야지, 엇나가지 않게 훈육해야지 같은 생각밖에 하지 못했었는데 F를 만난 뒤에는 사랑을 듬뿍 줘서 남들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못난 자격지심 덕에 F와 멀어지게 되었지만 긍정적인 기운이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강함이라는 수식어는 이처럼 부드러운 것에 더욱 잘 어울리는 명사가 아닐까?
나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을성이 깊은 고수 G
아주 안좋은 마음가짐이지만 나는 누가 내게 화를 내면 '이 새끼가?'하면서 공격적으로 변하곤 한다. 그리고 화도 잘 낸다. 하지만 최근 이런 마음가짐을 수정하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회사선배 G.
우리 회사 뿐 아니라 동종업계에서도 일을 잘한다고 정평이 난 선배와 최근 2달을 함께 일했다. 엄청나게 많은 실수를 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선배에게 화까지 냈다. 그래 맞다. 난 미친놈이다.
나 때문에 작업 시간이 늘어나도 선배는 내게 화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그럴수록 일을 더 가르쳐주고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술을 마시며 물어봤다. 그 비결과 이유를 말이다. "화를 내면 뭐하냐? 누가 이득인데?" 부처님이 환생을 하신 것일까?
팀의 전체적인 능률이 올라간 건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기고 관용은 분노를 잠재운다. 나도 이 선배를 본받고 싶다. 같이 일하는 동안 업무 스킬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
이 외에도 많은 굵직한 인물들이 내 인생에 있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앞으로도 이 교훈들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놓고 열심히 살아보겠다. 미래에 다시 한 번 이 글을 보게 될 날에는 더욱 성장한 내 자신이 있기를 바래본다.
+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긴 한 것 같다.
이 외에도 나한테 고맙다고,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한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그 중 소미의 글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블로그에 박제 한 번 하고 싶다. 고맙다.
오랜만에 쓴 주절주절 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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